일본의 사업가들 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한국과 혈연 지연 관계로 연결되는 경우가 제법 많다. 그래서인지 일본 법률사무소 중에는 한국 관련 기업 자문 업무를 주로 하다가 한국 가족법 영역으로까지 업무를 확대한 곳이 많이 있다. 일본 법무를 전문적이고도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한국의 법무법인이 별로 없다는 점과는 사뭇 대조되는 부분이다.
한일 간 가족법이 문제되는 분야로는 이혼, 상속, 후견, 자산승계가 있는데, 이 글에서는 일본의 상속법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과 일본의 상속법 중 어느 법이 적용되는지의 문제
전혼, 후혼 자녀들 사이의 상속 분쟁이나 고인의 재산이 일본에 남겨진 경우가 흔히 문제된다. 이와 같은 한일 간의 상속문제가 발생하여 일본에서 법적인 액션을 취하여야 할 때는 우선 일본법과 한국법 중 어느 법이 적용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기본적으로 피상속인의 본국법을 따르는 것으로 되어 있다(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일본법은 우리나라와 달리 유언으로 준거법을 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돌아가신 분의 국적이 한국이면 한국법에 따라, 일본 국적이면 일본법에 따라 처리함이 기본이다. 다만, 돌아가신 분이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이고, 일본에서 사망하면서 남긴 유언장에 일본법이 준거법으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한국법이 아니라 일본법이 적용된다.
간혹 고인인 재일교포의 국적이 미국인 경우도 있다. 이때는 상속되는 재산의 내용에 따라 준거법이 달라지게 됨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는 부동산의 상속에 관하여는 부동산 소재지 국가의 법을, 동산의 상속에 관하여는 거주지 국가의 법을 따르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시민권자가 사망하는 경우 일본이든 한국이든 1차적으로는 미국법이 준거법이 되는데, 준거법 지정에 관한 미국의 법 또한 일본 법원과 한국 법원이 따라야 할 외국법의 내용이 된다. 이를 어려운 말로 ‘반정’이라 한다.
그 결과, 예를 들어 미국 국적의 교포가 일본에 건물을 남기고 사망한 경우 일본 법원은 미국법이 아니라 일본법을 적용하게 되고, 일본 은행의 예금 또한 일본 상속법에 따르게 된다. 우리나라 법원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은 ‘반정’은 국제업무를 처리하는 변호사가 반드시 숙지하고 있어야 할 부분이다. 반정에 따라 준거법이 달라지고, 그렇게 되면 상속 순위, 지분, 유류분 인정 여부 등 클라이언트의 입장에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필자가 담당했던 사건 중에는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하여 살던 독일인의 상속재산 분쟁이 있었는데, 한국인 유가족측의 변호사는 안이하게도 피상속인의 본국법인 독일 상속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독일에도 반정이 인정되는 결과 거주지인 한국법이 적용되는 것으로 바로잡았던 기억이 있다(물론 한국법을 적용하는 것이 클라이언트에게 유리했다).
상속순위 및 법정상속분
일본법상 배우자는 언제나 법정상속인이다. 나머지 친족의 상속순위는 다음과 같다.
1순위: 자녀
2순위: 직계존속
3순위: 형제자매
법정상속분을 보면, 배우자와 자녀가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는 배우자에게 1/2, 자녀(들)에게 1/2이 분여되고, 배우자와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는 배우자에게 2/3, 직계존속(들)에게 1/3이 분여된다. 배우자와 형제자매가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는 배우자에게 3/4, 형제자매(들)에게 1/4가 분여된다. 동순위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들에게 할당된 지분을 균등하게 분할한다.
일본법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습상속을 인정하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먼저 사망한 상속인의 자녀만이 대습상속을 하고 배우자는 대신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자녀인 상속인이 먼저 사망한 경우에는 그 자녀, 그 자녀가 먼저 사망한 경우에는 손주가 순차 대습상속하게 되나, 먼저 사망한 상속인이 형제자매인 경우에는 그의 자녀(1세대)에 한해서만 대습상속이 인정된다.
유류분
일본법에서도 배우자와 자녀, 직계존속은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다.
일본의 유류분은, 우선 상속재산 중 유류분의 대상이 되는 부분(이를 “총체적 유류분”이라 부른다)을 계산하고, 여기에 각 법정상속인의 법정상속분을 곱하여 ‘개별적 유류분’을 계산하는 방식을 따른다. 총체적 유류분은 직계존속만이 상속인이 되는 경우는 1/3, 나머지 경우는 전부 1/2이 된다.
우리 민법과 다른 부분을 몇가지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류분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는 상속개시 시점에 남아 있는 피상속인의 재산만이 아니라, 피상속인의 생전에 증여된 재산의 가액도 가산된다. 이 점은 우리나라와 동일하나, 상속인에 대한 생전증여가 상속개시 시점으로부터 10년 내의 것으로 제한되는 점은 우리나라와 다르다(일본 민법 제1044조 제3항).
일본 민법에 따르면 상속인이 피상속인에 대하여 학대, 중대한 모욕 기타 현저한 비행을 범한 경우에는 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상속인 자격을 상실하는 추정상속인 폐제 제도를 두고 있다(일본 민법 제892조). 피상속인은 생전에 가정재판소에 상속인폐제심판을 청구할 수 있고, 유언으로 상속인을 폐제한다는 뜻을 표시한 때는 피상속인의 사망 후 유언집행자가 가정재판소에 폐제심판을 청구하게 된다. 상속인 폐제 결정이 내려지면 유류분을 상실한다.
나아가 일본의 법원은 유류분 행사가 권리 남용과 신의칙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피상속인을 버리고 나간 상속인(자녀 등)이 피상속인 사망 후 유류분을 주장하고 나서는 경우이다.
상속권이 침해된 경우의 권리 회복
상속권을 침해당한 정당한 상속인은 침해자를 상대로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그 기한은 침해사실을 안 날로부터 5년, 침해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20년이 된다.
2018년도 일본 상속법의 개정
일본 상속법은 2018년에 개정되었다. 상기의 내용에는 변동이 없고, 아래와 같은 내용이 새롭게 추가되어 현재 시행 중에 있다.
배우자거주권의 신설
예를 들어, 피상속인이 자택(2천만엔)과 예금(3천만엔)을 남기고 사망하고 배우자가 종래 거주하던 자택을 상속받고자 하는 경우, 배우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자택2천만엔과 예금500만엔, 자녀에게 돌아가는 몫은 예금 2천5백만엔이 된다. 배우자 입장에서는 종래의 거주 장소를 확보하는 장점은 있으나 예금 배분액이 줄어 생활비가 부족하게 되어 곤란하다.
이와 같은 점을 시정하여 상속 후 배우자의 주거권과 생계유지권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하여 배우자거주권이라는 것이 신설되었다. 배우자거주권은 배우자에게는 해당 주택의 ‘거주권’을 자녀에게는 ‘(거주권이라는 부담이 붙어 있는)소유권’을 취득시키는 것으로서, 자녀에게도 부담부 소유권의 평가 가액이 상속되는 결과 예금에 대한 배우자의 몫이 증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혼인기간 20년 이상 부부의 거주용 부동산 특례
종래 일본 상속법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배우자에게 생전 증여 또는 유증된 재산을 상속분의 선지급으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개정 상속법에서는 혼인기간 20년인 배우자의 경우는 거주용 부동산에 대한 증여와 유증을 상속분의 선지급을 보지 않게 되어 결과적으로 배우자가 상속받을 수 있는 몫이 증가하게 되었다.
유류분의 가액 정산화
유류분은 가업승계와 관련하여 큰 걸림돌이 된다. 예를 들어, 회사의 자산이나 주식을 경영승계자인 장남에게 남기고, 나머지 자녀들에게는 개인 자산(예금 등)만 나누어주는 경우, 사후에 나머지 자녀들이 유류분 침해를 주장하게 되면 회사 자산과 주식을 다른 자녀들에게 다시 나누어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상속법에서도 발생하는 문제이다. 우리의 경우 유류분반환청구에 대하여는 원물반환(즉, 위의 예에서 회사의 자산과 주식 자체를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고 가액반환(즉, 회사 자산과 주식을 돌려주는 대신 그 가치 상당의 돈으로 돌려주는 것)은 성질상 원물반환이 불가능하거나 원고와 피고가 가액반환에 합의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와 같이 사후에 유류분반환청구권에 의하여 원물반환이 행해지는 것은 고인의 의사에 반하는 것임은 물론 가업승계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면이 있다.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하여 일본은 유류분에 관한 권리 자체를 금전채권, 즉 유류분침해액에 상당하는 금액의 지급을 구할 수 있는 권리로 변경하였다.
맺음말
일본 상속법은 우리 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많이 있다. 피상속인이 일본 국적인 경우라면 상속권을 지키는 입장에서는 물론 장차 가업승계에 대비하는 입장에서도 일본 상속법의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할 필요가 있고, 정밀한 검토와 자산승계 계획의 설계가 필요한 경우에는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상기의 내용에 관한 질문사항은 정원일 변호사(이메일 주소는 여기를 클릭)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정원일 변호사는 대형 로펌의 기업자문 변호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법과 관련된 다양한 국제 업무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 법률사무소의 일본 변호사와 함께 현지에서의 신속하고도 적극적인 대응 또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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