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일본 기업을 상대로 받은 한국 판결의 일본 내 집행

【사 안】

일본기업인 J는 ① 자신은 일본에 소재한 일본 법인이므로 한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이 없고, ② 한국 법원의 정산금 산정 방식에는 문제가 있으며, ③ 일본에서의 집행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집행을 허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행이 불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일본 법원의 판결】

사건을 심리한 동경지방재판소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J의 주장을 배척하고 집행판결을 허가하였다.

  1. 당사자들은 정산대금을 한국에 개설된 K의 계좌로 지급하는 것으로 정한 것은, 곧 채무를 이행할 장소가 한국이라는 것이고, 채무이행지 법원의 관할권을 인정하고 있는 일본 민사소송법의 취지에 비추어 한국 법원에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함이 타당하다.
  2. ‘한국 법원의 정산금 산정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은, 집행판결은 외국재판의 당부를 심사할 수 없다고 규정한 일본 민사집행법의 내용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
  3. 외국재판의 집행판결 청구 사건에서 가집행 선고가 가능한지에 대하여는 일본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으나 신속히 집행력을 부여함이 타당하므로 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해 설》

한국에서 외국기업 또는 외국인을 상대로 승소 판결을 받았더라도 만약 피고에게 집행할 만한 재산이 국내에 충분치 않다면 차선책으로서 피고의 본국 재산에 대한 강제 집행을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재판은 주권의 문제이므로 한국 법원이 내린 판결이 당연히 외국에서 효력이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외국에서 소송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하면 당사자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분쟁의 통일적인 해결이라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외국의 재판에 대하여 자국 내에서의 집행을 허가하고 있다. 집행을 허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사건의 실체에 대한 주장과 입증을 다시 할 필요 없이, 외국법이 정한 일정한 요건(형식적인 요건이 대부분이다)을 충족하였다는 점만 입증하면 그 나라에서 내려진 판결과 동일하게 강제적인 집행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 케이스의 경우도 국내 기업인 K는 피고의 본국인 일본에서 부산지방법원 판결의 집행을 시도하였고, 일본법에서는 그 절차를 ‘집행판결 청구’라고 부른다(우리나라 또한 ‘집행판결’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본 법률의 규정

민사집행법
(외국재판소의 판결의 집행판결)
제24조 외국재판소의 판결에 관한 집행판결을 구하는 소는, 채무자의 보통재판적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재판소가 관할하고, 그 보통재판적이 없는 경우는 청구의 목적 또는 압류 가능한 채무자의 재산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재판소가 관할한다.
2. 집행판결은 재판의 당부를 심사하여서는 아니 된다.
3. 제1항의 소는 외국재판소의 판결이 확정되었음이 증명되지 않거나 민사소송법 제118조 각호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경우 각하된다.
4. 집행판결에 있어서는 외국재판소의 판결에 의한 강제집행을 허가하는 취지를 선언한다.

민사소송법
(외국재판소의 확정판결의 효력)
제118조 외국재판소의 확정판결은 다음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에 한하여 효력이 있다.
1. 법령 또는 조약에 의해 외국재판소의 재판권이 인정될 것
2. 패소한 피고가 소송의 개시에 필요한 소환 또는 명령의 송달(공시송달 기타 그와 유사한 송달은 제외)을 받거나 받지 못하였음에도 응소하였을 것
3. 판결의 내용 및 소송절차가 일본의 공공의 질서 또는 선량한 풍속에 반하지 않을 것
4. 상호보증이 있을 것

일본 법원이 말하는 집행요건으로서의 국제재판관할

일본법이 제시하는 외국재판의 집행요건은 우리 법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여 한국 민사소송법의 내용을 아는 입장이라면 매우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일본법은 국제재판관할권의 판정에 관한 구체적인 규정을 두지 않고 있고 국내 관할에 관할 규정과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민사소송법과 마찬가지로 채무이행지 법원의 관할을 인정하고 있다.  위 사안에서 한국기업이 국내 계좌로 정산대금을 송금받기로 계약서에 정한 것이 한국 법원의 관할이 인정되는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집행판결 절차는 말 그대로 이미 확정된 재판의 집행을 구하는 것이지 재판을 다시 하자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는 외국 판결의 내용 자체를 심사하지는 않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재판을 하다 보면 어디까지가 절차이고 어디부터가 실체인지 구분이 애매한 경우가 많다.  세 번째 요건인 ‘공공의 질서 위반 여부’를 검토하면서 재판의 내용 자체를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시간이 제법 지연된다)

J사가 “한국법원 채용한 정산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결국 사건의 실질에 대해 재심사해달라는 것으로서 일본법상 용납될 수 없고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외국판결이 인정, 계산한 대금 또는 손해배상금을 일본 법원이 언제나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금액이나 권리의 인정 근거가 일본의 자국법과 원칙에 비추어 도저히 인정될 수 없는 경우에는 일본 법원은 금액을 감액하거나 집행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그 근거는 일본 민사소송법 제118조 3호이고, 흔히 예로 들어지는 경우가 미국의 징벌적 배상금이다.

위 사건은 한국 법원의 판결로 끝이 났는데 만약 재판상 화해로 끝이 났을 때는 어떤가? 우리 법상 재판상 화해는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있으므로 일응 일본에서도 집행판결이 가능하리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법은 집행판결의 대상을 “외국재판소의 확정판결”로 좁게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법은 “확정판결 또는 이와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재판”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재판례 중에는 “판결”이 아니면 그것이 법원에서 진행된 절차라 하더라도 집행을 불허하는 경우가 우리보다 휠씬 많다.

Practical Point

  • 국제계약 체결 시에는 재판관할권 조항(jurisdiction clause)에 유의하자

    재판에서 이겼다고 전부가 아니다. 실제로 재판을 집행해서 만족을 얻어야만 의미가 있다.  국내에 실체도 없고 재산도 없는 상대방이라면 한국에서 재판을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위 사례처럼 돈을 받는 입장이라면 적어도 한국 판결을 일본에서 집행하는 데 재판관할이 문제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입장이나 돈이 걸린 문제가 아니라면 계약서에 한국 법원에 관할을 인정하는 조항을 두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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